미리보기
01 · 머리말
혹시 긴장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술이나 약에 기대고, 누군가는 명상과 요가, 혹은 강박적인 호흡법이나 자극적인 게임에 탐닉한다. 어떤 이들은 찰나의 쾌락을 좇아 과도하게 성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끝없는 쇼핑과 스마트폰 스크롤링으로 뇌를 마비시키며 불안을 회피한다. 몸을 혹사하는 격렬한 운동에 매달리거나, 일 중독자처럼 업무에 자신을 던져 넣어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이들도 있다.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모두 고요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평온은 정말 그렇게까지 애써야 얻어지는 것일까?
아니다. 평온은 피나는 노력 끝에 얻는 보상이 아니다. 우리 몸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주어지는 당연한 결과물이다. 본래 인간은 특별한 수련 없이도 평온한 일상을 영위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당연한 상태로부터 이렇게 멀어졌을까. 함정은 시간 속에 있다. 불안이 아주 오랫동안 삶을 잠식한 나머지, 뇌가 그 비정상적인 긴장을 ‘기본값’으로 설정해버리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불안하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면,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숨이 턱 막혀오거나 피곤한데도 매일 밤 쉽사리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일상, 평소 가슴이 답답한 느낌과 가슴을 찌르는 협심증 등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저 “나는 원래 예민한 성격이니까”라고 합리화하며, 그 불편함을 본모습으로 받아들인 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더 깊은 함정은, 회복의 과정에서도 이 자각이 여전히 어렵다는 점이다. 오랜 기간 불안을 겪던 사람이 회복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좀 살만하다”, “다 나은 것 같다”고 안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착각인 경우가 많다. 시간이 지나 진정한 평온에 도달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 그때의 나조차 여전히 불안 속에 있었구나’ 하고 말이다. 이처럼 당신이 ‘정상’이라 믿고 있는 현재의 상태조차, 사실은 우리 몸의 지휘부가 보내는 미세한 비상 신호의 연속일 수 있다.
문제는 이 신호를 놓친 대가다. 내부에서 자라난 스트레스가 몸이 버틸 수 있는 한계치에 도달하는 순간, 시스템은 결국 붕괴된다. 원인 모를 우울감과 갑자기 들이닥치는 공황발작, 그리고 소화불량, 발한, 근육통 같은 신체 증상들이 일상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작은 빛과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 과민, 평소 즐기던 음식 냄새에 구토반사가 올라오는 후각 과민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지옥이다.
그러나 가장 잔인한 것은 따로 있다. 병원에서 온갖 검사를 다 받아봐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정상’이라는 사실, 그리고 주변으로부터 꾀병이나 신병 취급을 받는 사회적 낙인이다. 그것은 당신을 더 깊은 고립으로 밀어 넣는다.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안심할 일은 아니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만성 피로, 잦은 소화 불량, 원인 모를 예민함은 이 붕괴로 향하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어떻게 똑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는 무너지고, 누군가는 멀쩡한 걸까? 어떤 이는 들개에게 물릴 뻔하고도 다음 날 웃으며 같은 길을 나서는 반면, 어떤 이는 비슷한 그림자만 봐도 숨이 턱 막히는 공포를 경험한다. 심한 경우 비슷하게 생긴 길조차 걷지 못하는 PTSD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것은 용기나 의지력의 차이가 아니다.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몸의 비상벨을 끄지 못하는 ‘고장 난 자율신경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남들보다 스트레스에 유독 취약하거나,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은 체질이라며 스스로를 자책해왔다면 이제 그 짐을 내려놓아도 좋다. 스스로를 HSP(Highly Sensitive Person, 초민감자)라고 결론 내리고, 예민한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은 소리에 놀라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금세 지치고, 타인의 감정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보며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사람이구나”라고 체념한 것이다. 하지만 그 ‘타고난 예민함’이라고 믿었던 것이 정말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오작동하는 자율신경계가 만들어낸 감각 과민인지는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후자라면, 당신의 성격이 나약한 것이 아니라 내부의 생존 시스템이 물리적으로 오작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오작동은 생활 습관 교정과 관리를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길을 안내하기 위해 쓰였다. 원인 모를 불안과 예민함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다. 병원 검사에서는 정상이라는데 정작 내 몸은 죽을 것 같은 괴리감, 그 사각지대에 놓인 불안의 진짜 원인들을 생화학, 뇌과학, 환경독성학 등 여러 관점에서 다각도로 살펴본다. 일상을 무너뜨리는 불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당신에게, 이 책은 삶의 무게를 덜어줄 새로운 과학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당신은 원래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이유 없는 불안에 시달리던 사람도 아니었다. 당신에게도 아무런 사투 없이 그저 무던하고 평온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의 당신은 그저 시스템의 오작동으로 인해 그 당연한 권리를 잠시 빼앗겼을 뿐이다. 평온해지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만드는 과정이 아니다. 그저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일이다. 당신은 예전처럼 다시 평온해질 권리가 있다. 이제 그 권리를 되찾기만 하면 된다.
02 · 저자의 오늘
잠들 시간이 다가오면 슬슬 졸리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한때 이것이 불가능했던 사람에게는 기적 같은 문장이다. 눈을 감으면 5분 안에 잠이 들고, 한밤중에 깨지 않는다. 심장 소리에 놀라 일어나는 일도, 새벽 3시에 갑자기 눈이 떠지는 일도 없다. 7-8시간을 통으로 자고,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상쾌하게 일어난다. 따로 스트레칭이나 명상을 하지 않아도 이미 호흡이 깊고 편안하다. 수면 앱 점수는 늘 80점 이상이고, 100점을 찍는 날도 드물지 않다.
일어나면 루틴을 따라 움직인다. 커튼을 열고, 소금물 한 잔을 마시고, 숙지황과 영지버섯을 달인 물을 챙긴다. 첫 끼를 먹기 전에 헬스장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세트 사이에 쉬는 동안 심박수 회복속도가 빨라 운동도 훨씬 수월하다. 운동이 끝나면 단백질 위주로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예전이라면 벌써 녹초가 되었겠지만 오히려 활력이 돈다.
남들이 카페인 수혈을 하는 오후에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머리가 맑다. 예전이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소파에 누웠을 텐데 지금은 그런 충동 자체가 없다. 일을 처리하면서도 예전만큼의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는다. 몸과 머리가 바빠도 마음은 평온하다. 웬만한 일에 짜증이 나지 않고, 시끄러운 식당이나 사람 많은 카페에 가도 아무렇지 않다. 대중교통의 갑갑한 공기나 사람들의 냄새도 예전처럼 역하지 않다. 오히려 사람 사는 곳의 정겨운 냄새로 느껴진다. 그냥 편안하다.
보통 낮 12시에 출근해서 저녁 9시에서 10시쯤 퇴근한다. 예전이라면 피로에 찌든 채 목적지만 생각하며 운전했을 출퇴근길에서, 이제는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계절에 맞는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만으로 하루가 즐겁다. 퇴근 후에는 씻고 책을 쓴다. 저녁 루틴을 마치고 누우면, 감사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위 글을 읽으며 “이 사람은 삶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저럴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가 없어서 평온한 것이 아니다. 겪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는 여전히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예전이라면 사업적 리스크 앞에서 불안에 짓눌려 도전 못 했을 상황에서, 지금은 불안에 떠는 시간 대신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스스럼없이 움직인다. 걱정이 사라진 게 아니라, 걱정에 잡아먹히지 않게 된 것이다.
예전과 똑같이 여전히 세상은 치열하고, 나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사업을 운영하고, 연구를 하고, 이 책을 쓰고, 쉬지 않고 움직인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다. 그 모든 것 속에서 마음이 평온하다는 것. 세상살이가 즐겁다는 것. 그리고 잠이 오면 평온했던 하루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잠든다는 것.
원래의 내 체력의 3배 정도의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평안하다. 이것이 회복 이후의 삶이다.
03 · 책 목차